4일짜리 졸속 심사로 의대 결정?… 공정성 논란 속 순천대 ‘들러리’ 우려
-'섬'만 외친 민형배 시장..전남광주시·교육부 '답정너' 공모?
- 평가 기준·절차 공개 없이 수천억 원 규모 국책사업 입지를 결정할 수 있나…
- 교육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책임 있는 설명 필요
교육부가 전남 국립의대 신설 후보지 추천 시한을 오는 30일까지 연장하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목포대와 순천대 중 1곳을 단독 추천하기로 하면서 지역사회가 다시 크게 술렁이고 있다.
전남광주시는 26일 국립의대 신설 추진계획 신청이 지난 20일 마감됐으나 교육부가 이날 신청 기한을 30일까지 연장했다고 밝혔다.
황기연 행정부시장은 이날 전남광주시 무안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목포대와 순천대 두 곳으로부터 신청서를 별도로 받은 뒤 평가를 거쳐 최종 한 곳을 선정해 교육부에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평가는 전남연구원에 위탁하고 외부 전문가들로 평가위원단을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또 탈락한 대학과 지역사회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청서류에 평가 결과에 따른 승복 확약서도 포함하기로 했다.
30년 넘게 논의돼 온 지역 숙원사업이자,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설립을 통해 전남의 의료체계를 바꾸게 될 중대한 국가사업의 입지를 불과 며칠간의 공모(신청)와 평가만으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 검증 절차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는 것 아니냐는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 '섬'만 외친 민형배 시장의 드러난 서부권 편향성>
민형배 전남광주시장은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섬이 많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전남의 현실’을 정부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전남의 도서지역 의료취약성은 분명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전남의 의료 문제를 섬과 도서지역의 의료 접근성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특히 순천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에는 여수·순천·광양을 잇는 대규모 생활권과 여수·광양 국가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지역은 단순히 인구가 많다는 차원을 넘어 대형 산업시설과 산업재해, 중증외상, 응급의료 수요라는 독특한 의료환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남의 의대 입지를 결정한다면 최소한 '섬'지역의 의료 접근성뿐 아니라 인구 규모, 생활권, 산업재해 위험, 중증응급의료 수요, 기존 의료 인프라와의 거리, 산업단지의 재난·응급 대응체계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전남의 의료취약성을 특정 지역의 ‘섬’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으로만 설명한다면,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의 의료수요가 평가 과정에서 가려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지역의 논리가 더 정치적으로 설득력이 있느냐가 아니다. 전남 전체의 의료수요를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다.
< ‘주말 포함 4일’ 초스피드 평가… 무엇을 검증할 것인가>
더 큰 논란은 공모와 심사의 시간이다.
전남광주시는 26일 선정 방침을 발표한 뒤 불과 나흘 뒤인 30일까지 신청서를 받아 전남연구원에 평가를 위탁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 곳을 선정해 교육부에 추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문제는 단순히 ‘4일’이라는 숫자에 있지 않다.
수천억 원 규모의 대학병원 설립과 의과대학 교육체계, 지역 의료수요를 결정하는 사안을 그 기간 안에 어떤 자료와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두 대학의 의학교육 역량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지역 의료수요와 의료취약성은 어떤 지표로 계량화하는가.
여수·광양 국가산단의 산업재해와 중증응급의료 수요는 평가에 어떻게 반영하는가.
도서지역의 의료 접근성과 동부권의 산업·응급의료 수요에는 각각 어느 정도의 가중치를 부여하는가.
대학병원의 입지와 운영 가능성, 기존 의료 인프라와의 연계성은 어떻게 검증하는가.
이러한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평가 기준과 방법이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면, 어느 대학이 선정되더라도 결과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탈락 대학 ‘승복 확약서’ 요구… 공정성 논란 키울 수 있다>
이번 절차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탈락 대학에 평가 결과를 수용한다는 취지의 승복 확약서를 요구하는 것이다.
의대 신설이라는 중대한 국가사업에서 응모 단계부터 탈락 대학에 결과 승복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공정한 심사라면 왜 응모 단계에서부터 결과에 대한 승복을 요구해야 하는가.
평가 과정에 중대한 절차적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지, 평가자료와 심사결과를 어느 수준까지 공개할 것인지, 탈락 대학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도 사전에 명확히 해야 한다.
< 교육부는 결정의 책임까지 지역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국립의대 신설은 의대 정원과 의학교육의 질, 대학병원 설립과 운영, 지역 의료체계의 재편이 동시에 걸린 국가 보건의료정책이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정책 판단과 책임 역시 국가가 져야 한다.
그런데 교육부가 구체적인 국가적 평가 기준과 원칙을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지자체가 대학 한 곳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결정의 권한은 국가가 갖고 있으면서 갈등과 후폭풍의 책임은 지자체와 대학이 떠안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는 왜 이러한 평가 방식이 필요한지, 어떤 국가적 기준에 따라 후보지를 판단하는지, 지역 의료수요와 의학교육 역량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지역에서 합의해서 하나를 가져오라’는 방식만으로 국가적 의료정책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순천대는 응모(신청)하되, 절차적 공정성은 끝까지 검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순천대의 선택 역시 쉽지 않다.
공모(신청) 자체를 거부하면 ‘의대 유치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 반대로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는 절차에 참여하면 결과적으로 특정 대학을 위한 경쟁에 들러리로 동원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순천대가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은 응모 여부와 절차적 검증을 분리하는 것이다.
공모에 참여하더라도 평가 기준과 심사 과정, 지역 의료수요 반영 여부, 평가위원 구성, 심사자료와 결과 공개 여부 등을 철저하게 확인하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특히 동부권의 의료수요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하고, 여수·순천·광양 생활권의 인구와 산업구조, 국가산단의 산업재해 및 중증응급의료 수요, 기존 의료 인프라의 한계 등을 평가 과정에서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응모한다고 해서 절차에 승복하는 것은 아니다.
순천대가 공모에 참여하는 동시에 공정한 심사와 객관적인 평가를 요구하는 것은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번 공모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기록하고, 향후 의대 신설 논의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로 남기는 것이다.
이번 의대 후보지 선정 논란을 단순한 지역 간 경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전남의 의대 신설 후보지를 결정하면서 왜 이토록 촉박한 절차가 필요한가.
전남의 의료취약성을 평가하면서 왜 도서지역과 동부권 산업·응급의료 수요를 동일한 기준에서 종합적으로 검증하지 않는가.
수천억 원 규모의 국가사업을 결정하면서 왜 국가가 명확한 평가 기준과 책임 있는 판단을 제시하지 않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
결과에 대한 승복을 요구하기 전에, 그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를 먼저 보장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라면 평가 기준부터 공개해야 한다.국가사업이라면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30년 넘게 기다려온 지역 숙원사업이라면 단 며칠의 속전속결 심사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검증과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공모가 또 하나의 정치적 거래가 아니라 정말 전남의 의료체계를 위한 결정이라면, 목포와 순천 어느 쪽에도 불리하지 않은 객관적 기준과 투명한 절차를 먼저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결과가 어느 대학으로 나오든 또 다른 지역 갈등은 피하기 어렵다.
문제는 목포냐 순천이냐가 아니다.
문제는 전남의 의료 미래를 결정하는 국가사업을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하게 결정하느냐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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