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대 하나’로 대학 두 곳을 합치겠다는 정치적 신기루
- 통합을 의대 유치의 수단으로 만든 정치권, 실패의 책임을 대학에 돌리지 말라
국립순천대학교와 국립목포대학교의 통합 논의가 사실상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와서 통합 결렬의 책임을 어느 한 대학이나 지역사회의 이기주의로 돌려서는 안 된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애초에 이 통합 논의는 무엇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었는가.
학령인구 감소와 지방대학의 위기는 대학의 생존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대학 통합의 본래 목적은 중복 학과의 구조조정, 교육·연구시설의 공동 활용, 교원과 재정의 효율화, 그리고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
결국 통합은 어느 한쪽이든 자신의 기득권과 기존 체계를 일정 부분 내려놓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순천대와 목포대의 통합은 출발점부터 달랐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먼저가 아니라 전남 국립의대 유치가 통합 논의를 끌고 갔다.
통합이라는 큰 틀 안에 의대 신설을 넣은 것이 아니라, 사실상 의대 신설을 위해 대학 통합이라는 틀을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됐다.

<대학 통합의 본질은 ‘나눠 갖기’가 아니라 ‘함께 내려놓기’다>
대학 통합이 성립하려면 양 대학 모두 일정한 것을 포기해야 한다.
중복되는 학과를 통폐합하고, 단과대학을 재편하며, 기존의 권한과 자산을 일부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 고통을 감수하는 이유는 하나다. 통합 이후의 대학이 이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통합 논의에서는 정작 이 핵심적인 구조조정 문제가 뒷전으로 밀렸다.
대신 협상 테이블의 중심에는 늘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있었다. 통합대학의 본부를 어디에 둘 것인지, 의대와 병원을 어디에 둘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됐다.
이것은 과연 대학의 미래를 위한 통합인가, 아니면 의대를 유치하기 위한 정치적 거래인가.
< 양 지역에 의대와 대학병원 없이 통합이 가능했을까>
순천과 목포에서 의대와 대학병원은 단순한 대학 시설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양 지역이 요구해 온 의료 인프라이자, 지역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핵심 공공자산이다.
특히 여수·광양 국가산단과 86만 인구가 밀집한 동부권에 있어 상급 응급의료 인프라는 타협할 수 없는 생존의 문제다.
따라서 한쪽 지역에만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을 주고 다른 지역에는 껍데기만 남기는 방식으로 통합을 성사시키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목포대학교가 의대와 병원의 핵심 기능을 순천에 넘겨준다면 목포 지역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반대로 순천대학교가 의대의 본체를 목포에 넘기고 순천에는 임상 기능만 남는다면 순천 시민이 이를 납득하겠는가. 결국 양 지역 모두에게 의대는 양보할 수 없는 제로섬 자산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이 난제를 대학 간 협상의 영역으로 넘겨버렸다. 이것이 이번 통합 논의가 안고 있던 가장 근본적인 구조적 모순이다.
<‘의대 하나로 대학 두 곳을 합치겠다’는 착시와 정치적 무능>
양 대학을 하나로 통합하면서 의과대학은 하나만 두겠다는 전제라면, 결국 어느 한쪽 지역은 의대를 갖지 못하게 된다.
이 불가능한 방정식을 풀 수 있는 유일한 타협점은 현실적으로 단 하나뿐이었다. 양 지역에 의대 정원을 균등히 배분하고, 동부권과 서부권에 각각 대학병원을 신설하는 '1대학 2의대 캠퍼스·2병원' 체제다.
양쪽 지역의 동의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은 사실상 이 방식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부와 교육부는 재정 부담과 정원 쪼개기 우려를 핑계로 이를 외면했고, 정치권 역시 이 현실적 대안을 정부로부터 끌어낼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쪽의 승리가 다른 한쪽의 패배가 되는 구조를 방치한 채 대학에게 무작정 양보만을 강요한 것은, 정치권 스스로의 정책적 무능을 자인한 꼴이다.
<공포 마케팅과 책임 전가를 넘어, 정치권과 정부가 결단할 차례다>
더 큰 문제는 통합이 난항을 겪자 등장한 정치권의 태도다. 자신들이 만든 모순적 구조는 외면한 채, "통합하지 않으면 의대 신설 자체가 무산된다"는 식으로 대학과 지역사회를 압박하였다.
협상 결렬의 책임을 대학의 이기주의로 몰아가며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비판이다.
애초에 '의대 하나'라는 제로섬 구조를 짜놓은 것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다.
그렇다면 이 구조를 풀 열쇠도 대학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정부가 파격적인 정원 증원과 두개 병원 설립에 대한 재정적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한, 순천대와 목포대 중 어느 대학이 협상 테이블에 앉든 결과는 같다. 한쪽은 얻고 한쪽은 잃는 게임에서 진 쪽은 승복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유리한 절충안을 받아들이라는 압박이 아니라, 정부가 '2의대 캠퍼스·2병원'이라는 유일하게 지속가능한 해법에 재정을 투입할지 여부를 명확히 밝히는 일이다.
정부가 이 결단을 내린다면 통합은 비로소 순천과 목포 모두가 잃지 않는 합의로 완성될 수 있다.
반대로 정부가 끝내 이 결단을 미룬다면, 순천대와 목포대 어느 쪽에도 상대의 몫을 빼앗는 방식의 '승자독식 통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두 대학 모두에게 각자의 역량과 당위성에 따라 독자적으로 의대 신설을 추진할 길을 열어주는 편이 낫다. 한쪽에만 자결권을 주고 다른 한쪽에는 통합을 강요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불공정한 게임일 뿐이다.
이번 통합 논의의 진정한 실패는 대학이 합의하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합의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 책임을 대학에 떠넘겼다는 데 있다. 이제 정치권과 정부가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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